장애인 지원정책의 사회적 모델 전환 과정

장애인 지원정책은 지난 수십 년간 패러다임의 중요한 전환을 경험해왔습니다. 장애를 개인의 결함이나 의학적 문제로 바라보던 ‘의료적 모델’에서, 장애를 사회적 구조와 환경의 산물로 이해하는 ‘사회적 모델’로의 전환이 그것입니다. 본 연구는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의 이론적 배경과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고, 한국 장애인 지원정책의 변천과 사회적 모델 도입 과정을 분석하고자 합니다.

장애 패러다임의 이론적 전환

전통적인 장애 이해 방식인 의료적 모델은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손상으로 규정하고, 의학적 치료와 재활을 통한 ‘정상화’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러한 관점은 20세기 중반까지 장애인 정책의 지배적 패러다임이었으며, 장애인을 ‘치료와 보호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했습니다.

반면 197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장애인 권리운동과 함께 등장한 사회적 모델은 장애를 사회적 구성물로 재개념화했습니다. 영국 장애학자 마이클 올리버(Michael Oliver)의 정의에 따르면,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적, 환경적, 태도적 장벽이 장애를 생산한다”는 것이 사회적 모델의 핵심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개인의 손상(impairment)과 사회적으로 구성된 장애(disability)를 구분합니다.

국제사회의 장애인 정책 패러다임 변화

국제사회에서 장애 패러다임의 변화는 여러 주요 선언과 협약을 통해 공식화되었습니다. 1981년 UN의 ‘세계 장애인의 해’ 선포, 1993년 ‘장애인 기회평등에 관한 표준규칙’, 그리고 2006년 ‘장애인권리협약(CRPD)’ 채택이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특히 CRPD는 장애의 사회적 모델을 국제법적으로 공인하는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협약 전문에서는 “장애는 손상을 가진 개인과 그들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사회에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저해하는 태도적, 환경적 장벽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한국 장애인 지원정책의 변천과 사회적 모델 도입 과정

초기 의료적 모델 중심의 정책(1981-1990년대)

한국의 장애인 정책은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 제정으로 본격화되었습니다. 초기 정책은 전형적인 의료적 모델에 기반하여, 장애인을 ‘보호와 치료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시설 중심의 격리 보호와 의료적 재활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1989년 ‘장애인복지법’으로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점은 1990년대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지원정책은 주로 의료비 지원, 보장구 지급, 시설 입소 등 신체적 손상에 대한 대응에 집중되었으며, 장애인의 사회참여나 권리 보장은 정책의 우선순위가 아니었습니다.

과도기: 재활모델과 사회통합 개념의 도입(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장애인 정책은 점진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법’ 제정, 1998년 장애인 의무고용제도 강화 등은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촉진하는 정책으로의 전환을 보여줍니다.

이 시기는 순수한 의료적 모델에서 벗어나 재활모델과 사회통합 개념이 도입된 과도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은 ‘통합의 대상’으로 간주되었으며, 사회구조 자체의 변화보다는 장애인의 사회적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사회적 모델로의 전환(2000년대 중반-현재)

한국 장애인 정책의 본격적인 패러다임 전환은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과 2008년 ‘UN 장애인권리협약’ 비준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 법률들은 명시적으로 장애의 사회적 모델을 수용하고,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고용, 교육, 재화와 서비스 이용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규정했습니다. 이는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환경적 장벽의 문제로 재정의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사회적 모델 전환의 실천적 의미와 과제

장애인 정책의 사회적 모델 전환은 정책 내용과 방향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의료적 재활과 소득보전 중심에서 접근성 보장, 차별금지, 자립생활 지원 등으로 정책 초점이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장애인 정책에는 의료적 모델의 잔재가 남아있습니다. 장애등급제는 2019년 폐지되었으나, 의학적 기준에 기반한 판정시스템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또한 실질적인 사회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환경 개선과 인식 변화는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제입니다.

결론 및 미래 방향

장애인 지원정책의 사회적 모델 전환은 단순한 관점의 변화가 아닌, 장애인의 시민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이는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에서 ‘권리의 주체’로 재정의하는 과정이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포용적 사회를 지향합니다.

향후 한국 장애인 정책은 ①의학적 기준에서 사회참여 기준으로의 장애판정체계 전환, ②당사자 중심 정책결정 과정 강화, ③보편적 설계(Universal Design) 확대, ④인식개선을 위한 사회문화적 접근 강화 등을 통해 사회적 모델의 이념을 더욱 실질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진정한 통합사회가 구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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