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 대응방안

도시재생은 쇠퇴한 도시 공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과정으로, 물리적 환경 개선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활성화를 포함하는 종합적 접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재생 과정에서 지역의 임대료 상승, 원주민과 소상공인의 이주, 지역 정체성 상실 등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 연구는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의 관계를 분석하고,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위한 젠트리피케이션 대응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개념과 발생 메커니즘

젠트리피케이션은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원래는 노동자 계층 거주지역에 중산층이 유입되면서 지역의 계층적 성격이 변화하는 현상을 의미했습니다. 현대적 의미에서는 지역 활성화에 따른 부동산 가치 상승으로 원주민과 기존 상인들이 비자발적으로 이주하게 되는 현상을 포괄적으로 지칭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발생 메커니즘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쇠퇴한 지역에 예술가, 창업가 등 창조계층이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유입됩니다. 둘째, 이들의 활동으로 지역의 문화적 매력과 상권이 형성되며 방문객이 증가합니다. 셋째, 상업적 가치가 상승하면서 임대료가 급등하고, 대자본이 유입되며 원주민과 초기 유입된 창조계층이 밀려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국내 젠트리피케이션 사례와 특성

한국에서는 2010년대 이후 서울의 홍대, 이태원, 성수동, 경리단길, 해방촌 등 여러 지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시화되었습니다. 서울연구원(2020)의 조사에 따르면,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된 지역의 평균 상업용 부동산 임대료는 5년간 약 78% 상승했으며, 같은 기간 원주민 이주율은 평균 32%에 달했습니다.

한국 젠트리피케이션의 특징적 양상은 그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입니다. 서울 성수동의 경우,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불과 4년 만에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의 전 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주거지역보다 상업지역 중심으로 진행되는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이 두드러지며, SNS와 미디어의 영향으로 특정 지역이 단기간에 핫플레이스로 부상하는 현상이 관찰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양면성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으로,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쇠퇴지역의 물리적 환경 개선, 지역 경제 활성화, 세수 증대, 범죄율 감소 등이 있습니다. 서울시 도시재생지역의 경우, 재생사업 이후 주변 지역 대비 지역내총생산(GRDP)이 평균 12.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정적 측면으로는 원주민과 소상공인의 비자발적 이주, 지역 공동체 해체,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 상실, 소득 불평등 심화 등이 있습니다. 특히 저소득층, 고령자, 소규모 자영업자 등 사회경제적 약자가 더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국내외 젠트리피케이션 대응정책 분석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접근법으로는 ①임대료 규제, ②토지이용 규제, ③공공 및 사회적 소유 확대, ④지역 역량 강화 등이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은 2020년 ‘임대료 상한제(Mietendeckel)’를 도입해 5년간 임대료 인상을 동결했으며, 영국 런던은 ‘지역 계획(Local Plan)’을 통해 적정가격 주택(affordable housing) 의무 비율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레거시 비즈니스 프로그램’은 30년 이상 된 지역 사업체에 보조금을 지원하여 지역 정체성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2015년 서울시가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후,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상생협약 체결 지원, 공공안심상가 조성 등의 정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성동구의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 및 운영에 관한 조례’는 국내 최초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로 주목받았습니다.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위한 정책 제언

도시재생의 긍정적 효과는 극대화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영향은 최소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첫째, 선제적·예방적 접근이 중요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 징후를 조기에 포착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재생사업 계획 단계부터 젠트리피케이션 영향평가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둘째, 공간의 공공성 확보가 필요합니다. 재생지역 내 공공 소유 공간을 확대하고, 공공토지 임대형 상가, 사회주택 등 대안적 소유 모델을 적극 도입해야 합니다. 서울시 해방촌의 ‘거점 앵커시설’은 공공의 안정적 공간 제공을 통해 지역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좋은 사례입니다.

결론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은 물리적 환경 개선과 경제적 활성화뿐 아니라, 사회적 포용성과 지역 정체성 보존을 함께 추구해야 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시장 논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 현상으로, 공공의 적극적 개입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협력적 거버넌스가 필요합니다.

특히 한국 상황에서는 단기적 규제를 넘어, 토지·부동산의 공공성 강화, 지역 기반 사회적 경제 활성화, 시민 참여형 도시계획 등 중장기적 제도 개선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도시의 다양성과 포용성이 유지되는 진정한 의미의 도시재생이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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